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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님

@‪sufiobywso

< SANDALWOOD >

* AU 세계관! 매그너스는 드라마의 내용과 다르게 조향사의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필림은 향을 타고난다. 그들 자신은 눈치채지는 못하더라도.

 

“더러운 네필림 향이 나는군,”

 

 이 땅에 아직 데몬과 그 그림자 속에서 싸우는 헌터들이 존재했을 때, 종종 듣던 소리다. 악마의 피를 물려받은 이들만이 맡을 수 있는 ‘어떤’ 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사의 피를 타고난 신의 아이들은 스스로 예사로운 존재가 아님을 알리던, 후각을 마비시킬 것 같은 향그러운 향을 가졌다. 사실 천사의 아이만이 향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타고난다’고 말하는 것은 네필림이 개인에게 종속된 향을 가지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다운월더도 체취를 갖지만 그것은 종족에 따른다.

 

즉, 네필림의 향은 축복받은 향, 개인의 성향을 타고난다. 그래도 먼데인과 구별함에 어려움은 없었다. 본능에 새겨진 감각 덕분이다. 그것이 지나온 삶의 시간에서 묻어난 체향인지, 천사의 피가 선물한 향인지를 구별하지 못 할 정도의 멍청이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창 전쟁이 진행되고 있을 때, 후각이 유달리 예민했던 종족들은 은신하기가 편했다. 섀도우 헌터, 이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엔젤룬을 받은 네필림들은 또 하나의 공통된 향을 가졌다. 두 가지의 향이 뿜어내는 강렬한 향이 마치 위치추적기처럼 그들의 위치를 드러나게 하기도 했다. 물론 그것도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최후의 섀도우 헌터가 아스라히 먼지로 흩어져버린 지도 벌써 아득한 시간이었다. 이제 더 이상의 헌터는 없었고, 그들을 기리는 이들도 없다. 오죽 그 강했던 매그너스의 마력이 잠들 정도였으니, 네필림 가문에 이어져 내려온 역사가 모두 사라질 법한 세월이었다.

 

그런 기억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지.

 

매그너스의 기억 속에는 언제나 비명소리와 함께하는 황폐함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마력이 완전히 휴면기에 빠지기 전에 매그너스는 여행을 떠났다. 향의 조합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유별난 월록이었던 매그너스는 그의 종족들이 혐오하던 네필림의 향을 사랑했다. 위대한 지옥의 아홉 왕자, 대 아스모데우스. 파괴자이자 에돔의 군주. 그리고 매그너스의 부친인 그는 본래 신의 아이였다. 날개와 권능마저 잃고 추락해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졌음에도 신의 아이는 신의 아이라는 건가. 매그너스의 유별남은 아스모데우스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향의 조합을 배우려는 까닭도 하나였다. 이제 영원히 기억속으로 사라질 섀도우 헌터의 향을 남겨놓기 위해서. 좀 더 그럴싸한 핑계를 대자면, 언제고 이 땅에 다시 데몬이 나타났을 때, 섀도우 헌터를 알아볼 단서를 하나 정도는 남겨놓아야 하지 않겠냐는 것도 있다.

 

그러나 매그너스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불멸의 삶을 살아가는 월록에게도 망각의 축복이 내려진다는 것이었는데, 세계를 돌며 어느 정도 향을 배웠다 싶을 즈음에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헌터들의 향을. 이론 상으로는 기억할 수 있었다. 햇볕 아래 마른 유리 같은 느낌이었는데-. 비슷하게 조합해낼 수는 있어도 매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무언가 빠졌다. 딱 하나만, 딱 하나만 더 첨가하면 될 것 같은데, 도저히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싶은 심정으로 선반에 있는 모든 향을 모두 꺼내 한 방울씩 실험해봤지만 전부 오답이었다. 약간의 좌절감도 들었지만, 언젠가 기억나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벽장 한 구석에 소중히 올려두었다. 조향의 일에서 손을 떼지도 않았다. 생각이 나면 언제든 바로바로 실험해보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부를 추구하려는 욕심은 없었기에, 명목상의 향수 가게를 차려두고 좋아하는 향을 조금씩 조합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 즈음에 매그너스의 마법이 완전히 멈췄을 것이다. 더 이상의 생존하는 섀도우 헌터는 없었고, 데몬도 없다. 제 아무리 강력한 힘을 지닌 월록이라도 쓰지 않으면 퇴화되기 마련이다.

 

먼데인과 다름없는 능력으로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삶은 귀찮기 그지 없었다. 그렇지만 불멸의 삶을 타고난 이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 매그너스는 외형이 변하지 않았기에 더욱이나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으며, 따라서 대외적인 관계 역시 깊게 맺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와, 향이 정말 좋네요. 당신이 향을 만드는 사람인가요?”

 

방문자가 생겼다. 머리 위에서 딸랑거리는 유리 종의 청아한 소리를 한껏 울리며 나타난 이는 멋들어진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였다.

 

“향수를 만들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어쩐지 들어오고 싶다는 느낌이 들어서, 하하, 이상하죠? 웃으며 어색한 손짓으로 뒷머리를 만지는 남자는 네필림이 틀림없었다. 폐부 깊숙한 곳까지 들어차는 향, 바닐라, 아니 코코넛인가. 달달하면서도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이 향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사실 그동안 한 번도 손님을 받은 적은 없었는데, 나름의 호승심이 생겼다. 네필림의 향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조금은 충동적으로 의뢰를 수락했다. 간만에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

 

작은 먼데인들이 컨닝을 한다는 게 이런 걸까. 미리 답안지를 보고 시험을 치러 들어가는 학생의 심정이었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네필림들의 향은 세상에 단 하나 존재하는, 그를 위한 향이었다. 운명과도 같달까. 애초부터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매그너스가 할 일이라고는 조금 더 부드럽게, 달콤하게, 때론 묵직하게 바꿔주는 것 뿐.

 

“매그너스, 당신 정말 실력이 좋구나.”

“사실 처음에는 의심했었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향이라,”

 

내다 버릴까 했는데 의외로 나한테 딱 맞는 거 있지? 당신 향수는 정말 최고야. 그 뒤로도 매그너스를 방문한 또 다른 네필림들은, 하나같이 이런 말을 하고 향수를 받아갔다. 당연히 맞을 수 밖에, 새삼 놀랍지도 않다.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꽤나 많은 네필림들이 잦은 빈도로 매그너스의 가게를 방문했다. 아마도 이건, 매그너스의 혈관 속에 흐르는 피가 강렬한 기폭제가 되어, 무의식 중에 사냥감을 찾아 헤메는 그들을 잡아 이끌었을 것이다. 낮게 혀를 찼다. 이것도 피의 끌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피의 끌림은 실재한다. 이런 종류의 것은 아닐지라도, 네필림의 주변에 유독 네필림이 많다던지, 늑대인간이 무리를 짓고 산다던지 하는 것들. 어쩌면 친숙함일지도 모르지. 종종 그렇게 네필림들을 맞아들이며 이백년이 넘는 세월을 향수를 만들고 연구하며 보냈다. 다른 월록들에 비해 마법을 재웠을 때의 상실감이 적었던 것도 무언가에 매진하며 살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매그너스는 감각이 좋아서, 이런 저런 향을 조합해 향수를 출시하기도 했다. 매니아 층도 생겼고, 생각 외로 수입도 좋다. 태초의 목적을 잃어, 미완성의 섀도우 헌터 향을 먼지가 내려앉은 찬장에 올려둔 것도 잊어 먹을 지경이었다.

그러던 때 나타났다.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이 세계 최후의 섀도우 헌터.

클레리 페어차일드가.

 

“당신이 월록이라는 걸 알아요, 매그너스. 난 섀도우 헌터에요.”

 

처음 그녀가 매그너스를 찾아왔을 때, 네필림의 향부터 느꼈다. 그래서 늘 그랬던 것처럼 향수를 제작하러 온 네필림인줄로만 알았다. 바보같이 너무 오랜만에 맡는 바람에 헌터의 향을 깨닫지 못했다. 클레리가 스스로를 소개하며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섀도우 헌터라고 말하는 순간 벼락을 맞은 듯 알아챘다. 찬장 한 구석에서 승화되지 않게 봉해두었던 향수가 떠올랐다. 드디어 때가 되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추억에 젖을 시간도 부족했다. 그녀는 차원의 포탈을 발견하면 곧장 돌아가버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내 마법은 잠든 지 오래에요.”

“그럼 깨워요!”

 

마력이 돌아오는 느낌은 몹시 추운 날, 한참을 밖에 있어 얼어붙은 손으로 따뜻한 코코아를 들고 한 모금 마셨을 때의 기분이었다. 손끝부터 따뜻한 기운이 몰려들어 점차 간질간질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 나쁘지 않았다. 다만 문제라면, 너무 오랜만이라 마력을 움직이는 게 뜻대로 되지 않을 뿐이었다.

 

“7시에 인스티튜트에서 만나요.”

 

일방적으로 약속을 잡는 클레리는 분명 오늘 처음 만나는 상대임에도 무례하다거나 불쾌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게… 저 세계에서 많이 친했나보지.

 

“멋있게 입고 와요.”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덧붙이는 말은 더욱 골치 아팠지만 파티라고 했으니. 클레리가 돌아가고 난 뒤, 옷을 고르거나 주문을 읊기보다도 달려가 찬장을 뒤지는 것이 먼저였다. 기억 속에 선명할 때, 빨리 완성시킬 생각이다. 매그너스는 떨리는 마음으로 병마개를 열었다.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향이 반갑다. 그러나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내가 이걸 닮았다고 생각했단 말이야?

 

6시가 거의 다 되어가는 시각. 매그너스는 검지 손가락 길이의 병을 들고 기뻐하는 중이었다. 성공했다는 느낌을 지워낼 수가 없다. 아마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한 부분은 마력이었던 건지, 월록들의 옛 주문서를 꺼내 과거 매그너스의 주 분야였던 포션을 조합하고, 섞고, 첨가했더니 된 것 같지만, 어느새 시간이 다 가버렸다. 이런. 매그너스는 후다닥 옷장으로 달려갔다. 뒤적거리며 옷을 골라 입고 로프트를 나섰다.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기분이 좋다. 어쩐지 일이 다 잘 풀릴 것만 같은 날이다.

 

젠장, 잘 되긴 뭐가 잘 돼.

 

매그너스는 생각한 것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하고 애써 웃음만 지었다. 눈 앞에 앉아있는 남자 덕분이었다. 알렉산더 기드온 라이트우드. 후각이 마비될 듯 샌달우드 향을 흩뿌리고 있는 네필림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 지 설명하자면, 약 한시간 전 클레리와 그녀의 연인인 네필림이 (아마도 이름이 제이스였던) 포탈 속으로 넘어갔다. 또 다시 차원의 틈새에서 무언가가 넘어오기 전에 포탈을 닫고 쓰러져 있는 데몬을 결박한 뒤 로프트로 이동시켰다. 그러고 떠나려는데, 주변이 너무 어지러져 있다는 것을 깨닫곤 조금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제이스? 클레리?”

 

조금 정신이 팔렸다고 누군가 다가오는 것도 몰랐던 스스로를 책망했다. 화들짝 놀라 돌아본 곳에는 아까 그, ‘알렉’이 서 있었다. 눈이 딱 마주쳤다. 아, 이런. 매그너스는 낭패감에 젖었다. 정리를 했다고는 하지만 주변은 어지럽지, 찾으러 온 제이스와 클레리는 간데 없고 매그너스가 홀로 서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수상했다.

 

“아, 이건……”

“당신, 매그너스? 왜 이런 곳에 혼자 있어요?”

 

알렉은 인상을 찡그리며 전혀 이해가 안간다는 듯 말했다.

 

“제이스가 이리로 들어가는 걸 봤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 왜 그는 보이질 않고, 또 무얼 하고 있는거죠?”

 

알렉은 어쩡쩡하게 서 있는 매그너스를 보다가 조금 빗겨서 남아있는 핏자국을 발견했다.

 

“세상에! 저건, 핏자국인가요?”

 

젠장. 안 지워진 것이 있었나? 업친데 덥친 격이다. 매그너스는 신음을 삼켰다. 이젠 빼도박도 못하게 생겼다. 안 그래도 불편한 사람이었는데 단단히 얽혀버렸다.

“당신 뭐야.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던 건지 설명해.”

 

말투부터 적의감이 묻어났다. 매그너스는 울고 싶었다.

 

“다 설명하죠. 오해입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제이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가 자신의 집이라는 말을 전해왔다. 별 일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오겠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알렉의 시선이 누그러졌다. 클레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기억은 없지만 집에 무사히 있다고 했다. 일단락 마무리되었나 싶었지만 알렉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매그너스는 알지 못했다.

 

“매그너스, 그래도 뭘 하고 있었는 지 알아야 할 것 같으니 함께 가요.”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는데 문제가 생기면 곤란해요. 이해하죠? 능글맞게 웃는 모습은 정말 완벽하게 잘생겼지만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여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게 바로 매그너스가 지금 알렉과 마주보고 앉아있는 이유였다. 알렉은 다시금 자신을 알렉산더 기드온 라이트우드라고 소개했다. ‘라이트우드’ 유서 깊은 라이트우드를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전쟁이 끝나고 모든 섀도우 헌터들이 뿔뿔히 흩어졌을 때에도 알음알음 들려오던 이름이었다. 지난 백년 정도부터는 소식이 끊겼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몰랐다. 감회가 새로웠다.

 

“인스티튜트는 첨단 산업의 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장소에요. 당신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 일단 간략하게 주소와 전화번호부터 알려줄래요?”

 

진작 이동하지 못한 것이 한이라면 한이었다. 매그너스는 거의 울 것 같은 심정으로 신상정보를 읊어주었다. 흐음, 알렉은 핸드폰을 들어 뭔가 이것저것 누르더니 매그너스의 핸드폰이 울리는 것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화면 위로 생판 보지 못한 전화번호가 나열되는 것을 보고, 매그너스는 이걸 도대체 꼼꼼하다고 해야하는 건지 의심이 많다고 해야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맞네요. 그럼 매그너스, 오늘은 내가 이 파티의 주최자라서 그냥 가 보지만 다음에 또 봐요.”

 

‘다음’이 또 있다니. 정말 골치 아픈 일에 얽히게 되었다.

***

 

“카밀-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니라니깐. 내가 어떻게 해야 그가 그만둘 것 같아?”

“깔깔,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라면 넌 바보야. 알면서 뭘 물어?”

 

매그너스는 블러드 메리를 들고 고개까지 젖혀가며 웃는 카밀에게 우는 표정을 지었다. 카밀은 눈물까지 흘리며 박장대소를 했다. 매그너스의 마력이 돌아온 것을 축하하기 위해 와준 그녀는 뱀파이어로, 한 백오십년 전인가, 만났다. 한 때는 연인관계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가끔 고민도 상담하고 영화를 보러가기도 하는 친구일 뿐이었다. 그녀는 정말 매력적이고 좋은 뱀파이어였지만, 매그너스를 놀리는 것에 재미가 들려있기도 했다.

 

“그걸 못하겠으니깐 그러는 거지…”

“일단은 기뻐해. 여전히 너는 그 어린 네필림이 뭣도 모르고 반할 정도로 매력적이야, 매그너스.”

 

빵- 총쏘는 듯한 제스쳐와 함께 윙크를 날린 카밀은 매그너스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한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매그너스는 울컥한 심정으로 말했다.

 

“바라지 않는다니까!”

“정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어오는 카밀에게 순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알렉에게 느끼는 감정이 호감으로 변한 지 좀 되었기 때문이었다. 알렉과 만난 지 이제 겨우 삼 주가 되어가는데, 다른 어떤 사람보다 빠른 감정의 발전이 있었다. 알렉은 다음에 보자는 말이 그냥 한 말은 아니었다는 듯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왔고, 이제는 매그너스의 로프트까지도 출입했다. 알렉이 매그너스에게 심문 그 비슷한 행동을 한 것은 첫만남때가 전부였다. 그는 꽤나 적극적이라서, 왜 이렇게까지 찾아오는 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안타깝게도 매그너스는 관계를 발전시킬 생각이 없었다. 매일같이 보는 사이에 정이 드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런.”

 

우물쭈물 말을 망설이고 있으니 카밀의 태도가 급격하게 변했다. 웃고 있던 얼굴에는 어느새 웃음끼가 사라졌고 비스듬히 쇼파에 기대있던 자세도 바르게 고쳐졌다.

 

“매그너스, 아직도?”

 

불멸자가 필멸자와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영겁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매그너스는 특히 정에 취약해서, 헤어짐에 큰 후유증을 가졌다. 깊게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이별 후의 상실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카밀은 매그너스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였다. 그리고 알렉이 매그너스의 벽에 가로막힌 이유기도 했고. 카밀은 몸을 일으켜 매그너스와 가까이 앉았다. 어깨 위로 올라온 팔은 온기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크게 위안을 주었다.

 

“두려워하는 건 이해해. 너는 여린 아이니까. 하지만 벽 뒤에 숨는다고 너를 보호해주는 것만 것 아니라는 걸 잘 알잖아?”

 

토닥거리며 하는 말은 십분 이해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시무룩해진 매그너스를 쓰다듬어준 카밀의 입가에 장난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네가 늘 망설이긴 했다지만, 이 정도까지는 처음인걸? 왜일까-, 응?”

 

그 말 속에 ‘그 네필림을 많이 좋아하는 구나?’라는 의미가 숨어있는 듯 해서 어쩐지 민망해지는 기분이었다. 차마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까웠다. 카밀은 몇 번 더 위로하다가 놀리다가를 반복하고 떠났다. 말은 저렇게 해도 매그너스의 주변인 중 누구보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매그너스는 웃었다. 카밀은 매그너스를 떠날 일이 없으니 언제까지고 이렇게 있어줄 것이다. 힘들 때면 언제나 옆에, 그렇게. 그런 친구가 곁에 있는데 도대체 나는 뭐가 두려워서 늘 도망쳤던 걸까.

 

“알렉, 어서 와.”

“음, 매그너스, 오늘은 뭔가 좀 다르네. 어쩐 일로 이렇게 반겨줘?”

 

알렉은 약간 얼떨떨한 투로 물었다. 매그너스가 생각해도 좀, 많이 다르긴 하지. 어제 카밀이 떠난 뒤로 혼자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었다. 알렉과 깊은 사이가 되고, 시간이 흘러 이별하는 날이 올까 두려웠다. 오지도 않은 그 날을 떠올리며 혼자 두려워하며 알렉을 밀어내고 벽을 세웠다. 죽음은 무섭다. 헤어짐이 무섭고, 아파할 것이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며 밀어내기만 하기에는 알렉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적었다. 네필림은 일반 먼데인보다도 짧은 삶을 사니까. 그 시간을 후회할 날들이 올지도 모른다. 매그너스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무한의 시간을 견주어봤을 때 스쳐가는 순간일지라도, 삶을 바쳐 열정적으로 사는 알렉을.

 

“글쎄. 그냥 반갑길래.”

 

싫었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매그너스는 살면서 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왔지만 그래도 나서서 작업을 건다거나, 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만 했다. 알렉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니 전혀. 당신이 반겨주니까 정말 좋은데.”

 

매그너스는 작게 미소지으며 알렉을 잡아 끌었다. 몸에 힘을 빼고 순순히 이끌려오는 알렉이 좋다. 그의 작업실로 향하는 문 앞에 서니 어쩐지 두근거리는 심정이었다. 후, 작게 숨을 들이쉬었다. 달칵 소리를 내며 문고리가 돌아간다. 문 틈새로 은은한 샌달우드 향기가 쏟아져 내린다. 뒤에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감탄사를 들으며 매그너스는 한 발을 들여놓았다. 이 곳은 매그너스의 로프트 내에 있는 개인 작업공간이었다. 아무도 들어온 적이 없는. 힐긋 곁눈으로 알렉을 바라보지만 그저 구경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 듯했다. 매그너스는 알렉의 손을 놓고 한걸음 나아가 무언가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돌아섰다. 알렉과 시선이 찬찬히 맞물려 들어간다. 강렬한 샌달우드 향이 보이지 않는 허공을 물들이며 퍼져나간다. 이 향을 만들어내느냐고 얼마나 고심했는 줄 모르겠다. 비슷한 것을 넘어서 똑같게 만들고 싶어서. 밤을 새우며 이것 저것 섞었다. 그리고 완성된 것이 바로 이것, 매그너스가 들고 있는 향수였다. 알렉은 병과 살짝 붉어진 매그너스의 귀를 보고는 짐작한 모양이었다. 평소보다 크게 떠진 눈에 차마 모른 척하기 어려웠던 애정이 가득 담겨있다.

 

“매그너스.”

“만들어주고 싶었어. 너에게 맞는 향을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그냥, 이건,”

 

와다닥 내뱉고 말 끝을 흐리는 매그너스의 손을 붙잡고 알렉이 웃었다. 행복한 웃음이었다.

 

“응, 고마워요.”

 

최고의 선물이라며 기뻐하는 알렉은 새삼 향을 배우기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건, 작은 신호였다. 언제나 널 생각하고 있고, 이제 나도 너에게 다가가겠다는.

Fin.

© 2018.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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