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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과님

@bluaappletree

< 데이트 >

그 파티가 있은 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알렉산더 라이트우드가 찾아왔다. 매그너스는 그때 악마 시체를 완전히 없에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어제 밤에는 악마 시체에 글래머를 써서 집까지 어찌저찌 옮기는 일은 해냈으나 커다란 덩어리를 없에는 일은 아무래도 갓 마력이 돌아온 월록에겐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결국 악마 시체 전체를 석화시켜서 어디 폐차장 같은 곳에 가져가 부숴버릴 생각으로 석화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알렉이 찾아왔던 그 시각 매그너스의 집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고, 거실 정 중앙에는 반쯤 석화가 되다 만 악마 시체가 늘어져 있었다. 그 꼴은 누구에게도 보이고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살짝 열어놓은 현관문 사이에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오늘은 영업 종료했는데요....”

베르사체 정장 자켓의 단추를 한개만 잠구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알렉은 아주 멋져 보였다. 진한 인상의 잘생긴 젊은이는 매그너스의 얼굴을 보자마자 한쪽 눈썹을 싹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기억 나세요? 어제는 통성명 할 시간도 없었죠. 저는 알렉 라이트우드 입니다. 어제 다시 찾으려고 했는데 일찍 돌아가셨더라구요. 다시 만나고 싶어서 텔레비전 광고를 보고 찾아왔는데, 너무 부적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아아 예에…….”

매그너스는 마치 오줌이 마려운 사람 처럼 조급한 태도로 떨떠름하게 말했다. 알렉은 매그너스의 태도가 미적지근하단 사실을 눈치채고 그에 반발하듯 더욱 밝게 미소지었다.

“오.”

알렉은 서운하다는 듯 팔자눈썹을 하고 말했다. 

“저는 적어도 고맙단 인사 정도는 들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매그너스는 잠시 알렉의 완벽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 잘생겼군.......그렇게 생각하다가 눈을 깜박이며 정신을 차렸다. 다행이 거실의 악마를 생각하니 잘생긴 남자는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그때는 고마웠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 조금 개인적인 일로 바빠서요.......”

그러면서 그는 문을 닫고 들어가버리려 했다. 그런데 그 전에 알렉이 손으로 문을 살짝 잡았다. 강압적인 태도는 아니었고 사실 거의 힘을 주지 않아서 손이 끼어도 뭐 상관 없다는 태도였다. 매그너스는 문을 닫으려다 말고 알렉을 올려다보았다. 알렉은 멈춰주어서 고맙다는 듯 눈웃음을 지었다. 

“정말 바쁘신건지, 아니면 저를 피하고 싶으신건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일단 전자라고 생각하고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당신이 좋아요. 어쩌면 첫눈에 반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당신 외모도 좋았지만, 우리 사이에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어요. 운명처럼 느껴졌습니다.”

운명처럼...운명처럼... 마지막 문장이 매그너스의 귀에 메아리 쳤다. 알렉이 말하는데 그의 얼굴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매그너스는 어쩌면 자신이 빨려들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말 잘생긴 사람이었다....... 당장 그의 목덜미에 코를 처박고 그의 품내음을 맡아보고 싶었다. 어쩐지 저기에서는 신선한 바람이 느껴질것만 같았다. 그는 자신이 마치 뱀파이어가 된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매그너스가 아는 한 운명이란건 실제로 존재하니까, 어쩌면 정말로 이건 운명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이 남자가 과하게 잘생겼거나.

“저…….”

매그너스는 순간적으로 알렉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할 뻔 했다. 그는 문득 거실 테이블 한 가운데 반쯤 석화된 채 늘어져있는 악마 시체를 생각했다. 그걸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나서야 그들이 너무 가까워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렉의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눈 앞에서 어른거리고 거의 입이라도 맞출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는 거의 집 안으로 들어와있었다. 매그너스는 뒤로 한발짝 물러서서 고개를 확 숙이며 말했다. 

“제가 지금 정말로 바빠서요.”

그러면서 알렉의 가슴을 손으로 살짝 밀려고 했는데 셔츠 위로 울룩불룩한 근육이 느껴져서 매그너스는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알렉은 뭔가 이상하지만 알겠다는 듯 자신의 가슴에 올라온 매그너스의 손을 살짝 잡았다. 그때도 매그너스는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얼굴이 너무 벌개져서 터질것만 같았다. 알렉은 매그너스의 손을 잡고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그럼 데이트는 어때요?”

“…….”

데이트? 매그너스는 그 순간 자신의 마지막 데이트가 200년 전이었다는 것을 생각했다. 

“괜찮으시다면 이번주 금요일 저녁 일곱시에 타키에서 봐요. 당신이 오든 안 오든 거기서 기다릴게요.”

알렉은 천천히 뒷걸음질 치면서 매그너스의 손을 천천히 미끌어트리듯이 놓았다. 그러면서도 알렉은 매그너스를 계속 응시하며 살짝 미소를 띄웠는데, 매그너스는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 처럼 그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알렉은 느리게 멀어지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매그너스는 그가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 녹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알렉이 뒤를 돌아보았는데, 매그너스는 화들짝 놀라 문을 쾅 닫아버렸다. 

문을 닫고 나서야 매그너스는 방금 전에 일어난 모든 일을 후회했다. 데이트라고? 데이트? 데이트으으? 문에 기대 서 있다가 매그너스는 인상을 찌푸리고 자신의 팔뚝을 괜히 만져보았다. 한때는 몸이 좋았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근육이 빠져서 물렁거렸다. 그는 괜히 기가 죽었다. 알렉은 젊고 잘생긴 청년이었고 자신은 늙고 흐물흐물한 노인이었다. 요즘 애들은 데이트를 어떻게 하더라? 옷은 뭐가 있더라? 아니, 아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괜히 나가서 창피를 당하느니 절대 나가지 않을 것이다. 매그너스는 그렇게 다짐하고 거실로 성큼성큼 걸어와 화가 난 사람처럼 악마 시체에 석화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문득, 알렉산더가 얼마나 키가 컸는지, 손 끝으로 느껴졌던 그의 거대한 가슴 근육이 어땠는지에 대해 곱씹기 시작했다. 

‘우리 사이에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어요.’

알렉의 말은 마치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때 마법이 삐끗해서 화분의 야자식물의 잎사귀 부분이 살짝 석화가 되어버렸다. 매그너스는 다시 고개를 부르르 털고 집중했다. 

‘어쩌면 첫눈에 반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알렉의 손이 그의 손을 쥐고 있다가 스르르 떨어져나갔던 것이 생각났다. 어찌나 크고 단단하던지, 그것으로 내 뒷목을, 어깨를, 등을, 허리를 쓸어주었으면. 두 팔을 그의 목에 두르고 키스를 해서 그의 붉은 입술에서 무슨 맛이 나는지 확인할수만 있다면........ 매그너스는 결국 석화 작업을 멈추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저 멀리 책장 가장 위에 올라가 앉아있던 체어맨 뮤가 후다닥 뛰어내려오더니 무릎에 앉았다. 매그너스는 자신의 충실한 친구의 목과 귀 밑을 긁어주며 한숨을 쉬었다. 데이트, 데이트라고? 연애에 관련된 모든것이 너무 오래되었다. 마지막으로 했던 연애도 제대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매그너스가 겁쟁이에 지루한 인간이라며 떠나버렸다. 매그너스는 체어맨 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마 안될거야. 그렇지?”

체어맨 뮤는 눈을 반쯤 감고 골골거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 날은 결국 집중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석화 작업을 다 마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꿈을 꾸었는데, 그게 평소와는 달랐다. 

꿈 속에서 알렉산더는 문을 억지로 잡아서 열고 있었다. 이게 아니었는데? 매그너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알렉의 눈은 무서울 정도로 이글이글 끓고 있었기 때문에 매그너스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알렉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달려오더니 매그너스의 손목을 움켜잡고 당겼다. 매그너스는 겁에 질려서 악 소리를 냈지만 곧 알렉은 키스를 시작했다. 손목을 쥐고 있던 손의 힘도 느리게 풀어지고 있었다. 매그너스는 알렉이 자신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 다른 이유로 이렇게 행동했다는 것을 알았다. 입술이 떨어지고 그를 보았는데 알렉은 울고 있었다. 매그너스는 당황했다. 알렉이 말했다. 

고작 그런 이유로 날 떠나지 말아요.

매그너스는 의아했다. 그러나 곧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말을 한다.

고작? 아니야, 내 천사. 그건 정말 큰거야. 그 때가 되면 나는 무너지고 말거야. 차라리........

차라리 뭐요?

알렉, 우리는 헤어지는 게 맞아.

웃기지 마!

매그너스는 알렉이 그런 식으로 소리를 치는 모습을 처음 본다는 사실을 알았다. 알렉은 거의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치더니 매그너스를 억지로 안고 입맞추었다. 매그너스는 제발 그만하라고, 이제 그만 해야한다고 소리치며 그를 밀어내려 했다. 알렉은 말을 듣지 않았다. 매그너스는 자신이 힘으로는 그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렉이 울부짖고 흐느끼며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모래를 어떻게든 긁어모으려는 듯이 매그너스를 끌어안고 또 끌어안는데 매그너스는 그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다.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견딜수가 없었다. 그만, 알렉, 그만. 그만! 그리고 그때 온 몸에서 푸르고 붉은 빛이 터져나왔다. 통제가 되지 않는 월록의 힘이었다. 충격파로 날아간 알렉은 벽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뒷목으로 피가 흐른다. 머리를 다친 것이다. 매그너스는 그자리에서 굳었다가, 알렉을 향해 달려갔다. 알렉을 끌어안고 얼굴을 확인하는데, 그는 마치 죽은 사람 처럼 늘어져 있었다. 매그너스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제발, 내 천사. 내가 잘못했어. 일어나. 일어나. 

벌벌 떨리는 손으로 911을 누르는데 손에 피가 묻어서 핸드폰이 잘 눌리지 않았다. 제발, 제발! 매그너스는 비명을 지르면서 번호를 누르려고 시도하다가 결국 마법으로 알렉의 상처를 치료해보려 했다. 별 거 아니야, 상처를 봉합하고, 그 다음에 생명에너지를 조금 불어넣고. 그리고 나서 알렉의 맥박을 확인하면 돼. 그런데 마법을 쓰기도 전에 매그너스는 자신의 손 끝이 느리게 회색빛으로 변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런 것에 대해 들어본적이 있었다. 몇백년 전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월록들이 충격으로 석화하기도 했었다. 그제서야 매그너스는 알렉의 죽음을 확신하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안해. 이건 다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나만 없었더라면, 너는........

그리고 매그너스는 울부짖는 형태 그대로 완전히 돌이 되었다. 

 

수요일 오후 늦게 눈을 뜬 매그너스는 극도의 피로함을 느꼈다. 그는 침대에 앉은 채 꿈을 곰곰히 곱씹었다. 그 꿈은 어쩌면 악마 시체의 영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네필림들이 악마를 그 자리에서 잿가루로 만들어버리는 무기를 사용했던 이유는 악마의 사체에서 인간의 정신을 타락시키는 에너지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혹은 어쩌면 예지몽이었을지 모른다. 힘을 잃기 전에는 종종 예지몽을 꾸기도 했으니까. 혹은 개꿈이었을지도 모르지.

매그너스는 우선 밥을 먹고, 고양이들에게도 밥을 주고, 다시 석화 작업을 재개했다. 그러나 자꾸 어지럽고 집중할수가 없어서 괴로웠다. 그는 잠시 소파에 앉았다가 알렉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가 사귀게 되는걸까? 그렇게 되면 네가 죽게 되는걸까? 그건 젊고 미래가 있는 청년에게 할 짓이 아니었다. 만약 이게 예지몽이 맞다면 여기서 끊어내는 편이 둘 모두에게 이로웠다. 하지만 만약 악마 탓이라면....... 매그너스는 악마 시체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악마는 지금이라도 이쪽을 돌아볼 것만 같다. 저것은 썩지도 않는다. 피곤했다. 매그너스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또 꿈이 찾아왔다.

 

1315년 영국의 대기근 때에는 아직 대부분의 마법생물들이 자신의 힘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때 월록들 사이에서는 이 기근이 과연 죽음의 묵시록에 나오는 상황인지 아닌지에 대한 토론이 대단했는데, 매그너스가 당시 편지를 주고받던 말라키스 백작이라는 월록은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한 지역의 시체더미 위에 죽음과 역병이 서 있는지 아닌지 확인해보라고 제안했었다. 그리고 몇 년 뒤 매그너스의 집으로 아스모데우스가 찾아왔을 때 매그너스는 말라키스 백작의 편지를 기억해냈다. 아스모데우스는 현관에 서서, 굳어버린 매그너스에게 미소를 지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어제 밤에 네 꿈을 꿨단다.

매그너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스모데우스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 처럼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을 치켜뜬 채 속삭였다.

네 상실에 대한 꿈이었어. 

매그너스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때 아스모데우스가 그를 확 끌어당겼다. 그는 빨려들어갔고, 더 이상 1300년대가 아니었다. 그는 현재에 있었고, 그건 더 이상 꿈도 아니었다. 아스모데우스는 매그너스의 눈 앞에, 생생한 모습으로,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매그너스는 소파에 앉아서 얼떨떨하고 멍한 얼굴로 아스모데우스를 바라보았다. 매그너스가 말했다. 

“아버지. 악마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오지 못해요. 모든 통로가 막혔다구요.......”

아스모데우스는 묘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도 알아. 그러니까 잘 들으렴. 지금 이 순간은 네게 아주 중요해.”

“…뭐가요?”

매그너스는 멍청하게 되물었다. 아스모데우스는 말했다.

“모든 것이 다 괜찮을거라는 걸 네가 믿지 않으면 말이다.”

그러면서 아스모데우스는 악마의 시체를 지팡이 끝으로 툭 건들였다. 매그너스는 그제서야 자신이 할 일이 있으며, 그걸 하지 않고 잠들었음을, 지금 이것조차 꿈이었음을, 아니, 이건 사실은 그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스모데우스가 찾아왔을 때 했던 말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때 아스모데우스는 먼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매그너스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현재와 미래에, 아닌가? 과거와 현재에 동시에 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쨌거나 매그너스는 이제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 

 

매그너스는 한 밤중에 깨어나서 악마의 시체를 보았다. 저것이 그를 잡아먹고 있었다. 그는 가장 먼저 책을 뒤져서 자신에게 보호 마법을 걸었다. 그리고 석화 작업을 완성하고, 그것을 부유 마법으로 들어서 차에 옮긴 뒤 폐차장에서 성공적으로 부숴버렸다. 모든 일을 끝내고 나서는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온 몸을 던졌다. 마치 지난 이틀동안 잠을 자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럴법도 했다. 악마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매그너스는 눈을 감았다. 그는 순식간에 잠들 수 있었다. 이제는 악몽을 꾸지 않아도 될거라는 생각을 하자 더욱 마음이 편해졌다.

 

매그너스는 그가 다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요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밀가루에 초콜렛 파우더를 섞고 있었다. 준비된 것들을 보니 초콜렛 케잌을 만드는 것 같다. 평소 그라면 먹지 않는 음식이었다. 반죽은 마법을 쓰지 않고 했다. 다시 마력을 잃었던가? 매그너스는 그때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그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매그너스?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매그너스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발코니로 걸어나갔다. 누군가 안락의자에 앉아서 해가 지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알렉?

매그너스는 그를 향해 다가갔다. 백발이 다 된, 아주 멋있게 늙은 알렉이 거기 앉아 있었다. 

왜 불렀어?

매그너스는 알렉의 앞에 쪼그려 앉아 그의 무릎에 손을 올리고 미소지었다. 알렉은 눈을 감고 있었다. 이상하다, 그가 부른 것 같았는데. 매그너스는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부르려 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그너스는 알렉의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 보면서 생각한다. 그의 몸은 아주 차갑다. 죽은지 오래 되었다는 말이었다. 네가 내 이름을 부른 게 아니라 내가 착각을 했구나. 마지막 순간에 네 옆을 지키지도 못했구나. 결국 저 케잌을 같이 먹지도 못했구나. 매그너스는 말했다.

하지만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매그너스는 의자를 끌어와서 알렉의 옆에 앉았다. 그는 멍하니 노랗고 붉은 구름들이 떠가는 것을 보았다. 해가 그들 사이로 느리게 숨는 모습을 보았다. 매그너스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석화가 일어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큰 충격은 없었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너와 만나던 순간부터, 나는 네 죽음을 생각했단다. 너는 행복했니? 매그너스는 자신이 행복했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매 순간 사랑했던 상대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던 삶을 생각했다. 매그너스는 울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사랑한다고 더 많이 말해줄 걸. 그런 후회를 했다.

 

매그너스는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나서 묘하게 정신은 맑았지만 어쩐지 멍한 기분이었다. 뭐였지? 사실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건 진짜 예지몽이었다. 그는 자리에 일어나 앉아 넋이 나가서 자신의 무릎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흐느껴 울고 있는데 침대 위로 뛰어올라온 체어맨 뮤가 매그너스의 손등과 턱을 핥았다. 매그너스는 손을 떼어내고 체어맨 뮤를 바라보았다. 왠일로 처칠도 그의 발치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매그너스는 다시 흐느꼈다. 체어맨 뮤가 걱정스럽게 야옹 야옹 울었고 처칠이 이쪽을 힐끔거렸다. 어쩌지? 이제 어쩌지? 그는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

알렉은 저녁 여섯시부터 타키에서 사람들이 들어오는 문쪽이 잘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있었다. 매그너스는 정확히 7시 정각에 쭈뼛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알렉이 벌떡 일어나 반갑게 손을 흔들자 잠시 자리에 굳어 서 있었다. 알렉은 자리로 안내하기 위해 직접 성큼성큼 다가갔다가 매그너스의 눈이 묘하게 붉고 부어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는 순식간에 심각해진 표정으로 매그너스의 어깨를 한 손으로 가볍게 짚으며 말했다. 

“매그너스, 무슨 일 있었어요?”

매그너스는 알렉을 바라보았다. 어깨를 짚은 것을 약간 신경쓰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저번에 만났던 때와 태도가 조금 달라진 것만 같았다. 똑같이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지만 그때는 조금 어수룩했다면 지금은 어쩐지 불안하고 공포에 질린 느낌이었다. 알렉은 인상을 쓰며 매그너스의 얼굴을 들여다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말해봐요. 뭐가 문제예요?”

그런데 매그너스는 알렉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그가 너무 빤히 바라보니 알렉은 조금 가슴이 뛰는 것만 같았다. 매그너스는 곧 이렇게 말했다. 

“나는…이런 게 오랜만이예요. 그러니까, 데이트나 뭐 그런거 말이예요.”

그는 묘하게 침착하게, 그러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너무 급하게는 말고, 뭐든지 천천히 해요.”

알렉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함박웃음을 지었다. 

“물론이예요.”

그는 신이 난 것 처럼, 그러나 아주 정중하게 매그너스를 자리로 안내했다. 매그너스는 알렉의 뒤를 쫒아가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안내한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 알렉이 앉았다. 매그너스는 알렉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을 아주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리고 어떤 확신을 갖고, 미소를 짓고, 먼저 화이트 와인 한 잔을 주문하기로 결정했다. 

Fin.

© 2018.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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