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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롤롤로님

@horray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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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가 넘은 시각 한 밤 중의 뉴욕거리는 조용하기만 하다. 조용한 밤거리 보다 더 조용한 뒷골목을 알렉이 가로지르며 걸어가고 있다. 몇 번의 갈림길을 망설임 없이 지나간 알렉이 한 길 앞에 섰다. 아까의 조용한 거리와 달리 화려한 불빛과 시끄러운 음악이 가득 찬 그 안으로 알렉은 발걸음을 옮긴다.

 

브루클린의 뒷골목은 클럽과 술집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었기에 밤이 되면 그 하루를 시작했다. 몇 개의 클럽과 술집을 지나쳤을까, 알렉이 한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끈적한 커플들의 손놀림에 알렉의 인상이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며칠 째 이곳에 오는 거지만 도저히 이런 광경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플로우에서 미친 듯 춤을 추는 사람들을 가로질러 알렉은 스탠딩 바에 다가갔다. 알렉이 오자 며칠 새 얼굴을 익힌 바텐더가 아는 체를 해왔다.

 

"왔어? 오늘은 좀 늦었네."

"스카치 스트레이트로"

"매번 급하다니까"

 

저랑 대화하기 싫냐고 불평하는 듯 한 바텐더를 알렉이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러자 바텐더가 알겠다는 듯이 눈을 한 번 찡긋하고는 알렉 앞에 잔을 내려놓는다. 잔을 든 알렉이 고맙다는 듯 손짓을 한 번 하고는 뒤를 돌아 플로우 너머 테이블을 보았다.

 

9시 방향 테이블에서 여자랑 키스하는 사람은 뉴욕 쪽 보스 2시 방향 테이블에서 대마를 피는 놈은 보스턴 쪽 행동대장 그리고 저기 5시 방향 테이블은...LA쪽 보스다. 이쪽 동네도 아닌 인간이 왜 여기 있는거지 알렉은 의문을 가지며 손에 들린 스카치를 마셨다. 여기저기 널린 인간들이 뒷세계에서 한 가닥씩 하는 거물들이지만 알렉은 그들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는 찾고 있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그를 찾아 벌써 일주일 째 클럽에 출석체크를 하고 있지만 어째 흔적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미간을 찌푸린 알렉은 지난 번 루크가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얘 찾으려면 고생 꽤나 해야 될 걸. 자기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가는 인간이라'

 

클럽 너머를 살펴보던 알렉이 이를 아득 물며 왜 자신이 여기 오게 되겠는지 다시 생각해도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그날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열흘 전 이었다.

 

 

 

***

 

 

 

탕-! 책상위에 팽겨 쳐진 파일들에 열중쉬어 자세로 있던 알렉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숙였던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화가 잔뜩 난 본부장, 루크의 얼굴이 보여 알렉은 다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의 원인은 어제 나갔던 임무 때문이었다.

 

FBI 뉴욕 지부의 요원인 알렉은 지금까지 주시하던 마약조직의 소탕을 위한 작전에 투입되었었다. 약 반 년에 걸친 계획을 따라 바로 어제가 조직을 검거하던 날이었는데 알렉의 실수로 인해 그만 확보해야할 마약들을 놓쳐버린 것이었다. 거기다가 놓친 마약들을 다시 잡겠다고 뛰어든 알렉의 팀원 몇 명이 부상을 입어 병원에 실려 간 이 상황에서 모든 책임은 알렉을 향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지금 루크에게 대차게 까이고 있는 거고

 

"알렉산더 라이트우드"

 

옙 루크의 부름에 알렉이 숙인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목소리부터가 낮은 게 이번일은 징계가 상당할 것 같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이번 일 징계 못 피한다는 건 알지?"

"알고 있습니다. 뭐든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징계가 최소 좌천에다가 잘하면 정직이란 것도 알고?"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야 이씨 넌 예상하고 있단 놈이 왜 이렇게 침착해?! 누군 너 징계 빼주려고 왠갖 고생을 다 하는데!!"

 

덤덤한 알렉의 태도에 결국 열이 뻗친 루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사실 이번에 알렉이 친 사고는 지금까지의 사고 중에서 가장 스케일이 큰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그 망할 놈을 정직시켜야 된다고 난리를 치던 상부를 간신히 막고 온 루크가 화낼 만 하다는 것이다. 한참을 혼자 화를 내다 지쳤는지 루크가 한숨을 내쉬고는 알렉에게 오라며 조용히 손짓했다. 알렉이 다가가자 그는 아까 책상에 던졌던 파일을 들어 알렉쪽으로 밀어줬다.

 

"열어봐"

"이게 뭡니까"

"네놈 징계. 정직을 시키니 어쩌니 하는 거 이걸로 막았으니까 무조건 해결해"

 

파일을 손에 든 알렉이 앞장을 넘기자 한 남자의 사진이 보였다. 위로 올린 머리에 화려하게 꾸민 동양인 남자였다. 들여다보는 알렉의 미간이 점점 찌푸려졌다.

 

"누구죠 이게"

"요즘 이 바닥에서 제일 핫한 놈이지. 네가 잡아들여야 할 놈이고"

 

태평하게 말하는 루크의 모습에 파일을 열어둔채로 책상에 내려놓은 알렉이 루크를 쳐다보았다. 찌푸린 미간이 펴지지 않고 여전히 있자, 루크는 알렉을 가볍게 째려보며 말했다.

 

"뭐, 그렇게 봐서 어쩔 건데. 표정 풀고 설명이나 들어"

 

루크가 책상 앞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손짓했다. 별로 내키지 않는 듯한 몸짓으로 의자를 빼 앉은 알렉의 앞에 루크는 아까 본 남자의 사진을 내밀었다. 자세 똑바로 하고 들어 이 망할 놈아

 

"이름 매그너스 베인, 북아메리카 내 마약 최대 공급책 중 하나야. 주 활동 지역은 뉴욕. 최근 3년간 일어난 마약시세 폭등의 주요 인물로 지목되고 있고, 얼마 전 네가 잃어버린 '블러드 메리'를 들고 토낀 놈이야"

"블러드 메리? 그거 들고 간 인간입니까?"

"그래, 임마 네 징계의 일등공신이지. 보다시피 조직으로 활동하지 않고 개인으로 활동해. 마약 수입, 공급, 시세, 거래등등 거의 모든 일을 혼자서 하는 인간이지."

"그 일을 다요? 그런데 조직도 아니고 개인이면 그냥 잡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게 될 것 같으면 그랬겠지. 자 봐라. 얘랑 엮인 조직들이다."

 

책상에 쌓여있던 무더기들 중 종이 한 장을 빼낸 루크가 알렉에게 내밀었다. 가볍게 받아든 알렉의 표정이 리스트를 훑으면서 점점 굳어갔다. 브루클린, 시카고, 보스턴, 워싱턴 D.C, 필라델피아, 거기다가 마이애미까지 이거 완전 전국구다. 북아메리카 내 모든 조직이랑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에 알렉이 루크를 보자 루크는 어쩌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 거릴 뿐이었다.

 

"이런 인간을 저 혼자 잡으라는 겁니까? 잘못하다가는 여기 북아메리카 전쟁 납니다."

"어쩌겠어. 네가 친 사고 스케일이 있는데 정 뭐하면 병원에서 아직 골골거리는 놈들 데려다 하던가."

 

낮게 한숨을 쉰 알렉이 알겠다며 파일을 닫았다. 이것까지 망하면 제 손으로 정직시켜버릴거라는 루크의 말에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고 인사한 알렉이 본부장실에서 나왔다.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는 동안 꽂히는 시선들에 알렉은 수그러드는 고개를 간신히 치켜 올렸다.

 

책상 앞에 앉은 알렉은 다시 한 번 파일을 들쳐 사진을 집어 들었다. 몰래 찍은 사진인지 흐릿한 사진의 배경은 클럽이었다. 그는 몇 명의 남녀에게 둘러 쌓인 채 앉아 술을 들이켜고 있었는데 그 몸짓이 사진이었지만 나른한 고양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잔에 가려 코 아래가 보이지 않았지만 반대편을 응시하는 눈만은 검게 빛나고 있었다. 그 얼굴에서 알렉은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그런 이유로 알렉은 지금 매그너스의 소유인 클럽 판데모니움에 매일 같이 출석도장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루크의 말대로 지금까지 매그너스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하다못해 그를 대신해 클럽 운영을 총괄한다는 매니저 역시 보지 못했다. 나름 꾸민다고 왼쪽 손목에 찬 메탈시계가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도 역시 허탕 친 것 같다는 생각에 알렉은 늘어지는 몸을 뒤쪽 테이블에 기댄 채 남은 술을 들이켰다. 도수가 높은 술이 넘어간 목 안이 화끈거렸다.

 

"술 잘하나 봐?"

 

빈 잔을 만지작거리다 옆에서 들려온 말소리에 알렉은 별 생각 없이 옆을 돌아보았다. 돌아보자 가장 처음으로 보이는 검은 눈동자. 알렉은 그 눈을 다시 마주하자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사진에서 봤을 때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그 눈동자가 지금 알렉의 앞에서 알렉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알렉이 아무 말 없이 보고만 있자 매그너스는 입꼬리 한 쪽을 올리며 다가왔다.

 

"그거 도수 높은 건데"

 

그를 처음 만나면 어떻게 해야지라고 세워놨던 계획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그가 다가오자 풍기는 묘한 향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런 알렉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그너스는 정면을 바라보는 알렉의 앞에 다가왔다. 정면으로 매그너스의 얼굴을 보자 사진과 다르게 화장을 했는지 눈 밑에 글리터가 반짝거렸다. 검던 머리도 파란색 브릿지를 넣어 낯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이상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잘 어울렸다.

 

"매그너스 베인"

"오, 날 아나봐? 그러면 내 고객인건가?"

 

한 손에 칵테일 잔을 든 매그너스는 알렉이 이름을 부르자 놀라워하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고객이냐며 이것저것 묻는 매그너스를 말없이 낮게 바라보고만 있자 매그너스는 옆에 테이블에 잔을 내려놓고는 알렉에게 손짓했다. come with me.

 

클럽 안 쪽 복도를 따라가자 하얀색의 큰 문이 보였다. 매그너스는 익숙하게 문을 열었고 따라 들어간 알렉은 문처럼 온통 하얀색인 방에 의아해졌다. 방 한쪽 벽에 붙은 쇼파에 앉은 매그너스가 반대편 쇼파를 권하고는 쇼파 앞 탁자 서랍에서 검은색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열어 꺼낸 것은-

 

"블러드 메리"

"얼마 전에 구한거야. 멕시코 갱들 사이에서 좀 다툼이 있었거든. 그냥 조금 뭐 사소한...알지?"

 

알지, 아주 잘 알지 그 다툼을 만든 게 나하고 내 팀이었으니까 여유로운 목소리로 블러드 메리의 출처를 말하는 매그너스의 모습에 알렉은 속으로 이를 악 물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매그너스에게 홀렸을지 몰라도 블러드 메리를 본 순간 알렉은 정신을 차렸다. 자신은 지금 여기에 매그너스를 잡으러 온 거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에게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을 마약을 사러 온 고객이라 생각한 건지 순순히 물건을 꺼내놓자 알렉은 조금 더 상황을 끌어보기로 했다.

 

"얼마나 가지고 있지?"

"글쎄, 적은 양은 아니지. 왜, 관심 있어?"

"당신이 가지고 있는 양 전부 가져가고 싶은데"

"오, 그걸 다? 보기보다 통이 큰가봐?"

 

블러드 메리를 상자에 넣은 매그너스가 알렉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쪽 턱을 괴고 알렉을 보는 매그너스의 눈에 은근한 매혹이 담겼다. 반대쪽 손이 알렉의 옷깃에 닿았다. 가볍게 옷깃을 쓸어내리다 셔츠의 팔 부분을 훑어 내리는 그 손짓은 느리지만 은근하게 느껴졌다. 얇은 셔츠 위로 느껴지는 매그너스의 차가운 손에 알렉은 닿은 피부가 달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주친 눈에서 검 빛 이채가 띄자 알렉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클럽 밖을 뛰쳐나갔다. 밖을 나오자 클럽안의 뜨거운 공기와 다른 서늘한 바람이 알렉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제야 참았던 숨을 토해낸 알렉은 고개를 들어 판데모니엄의 입구를 돌아봤다. 간헐적으로 깜빡이는 판데모니엄의 붉은 글자가 알렉의 동공에 부딪쳤다.

 

그는 위험하다. 알렉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모든 범죄이력이나 그와 관계된 조직들과 상관없이 그는 충분히 그자체로 위험한 인물이다. 네온사인의 demon이라는 글자가 밝아졌다 꺼지길 반복했다.

 

 

 

***

 

 

 

"어때보여?"

"글쎄, 별로 경험은 없어보이는거 같은데?"

 

언제 왔는지 옆에 붙은 라파엘의 물음에 매그너스는 말꼬리를 늘리며 대답했다. 흥미가 떨어졌는지 곧장 몸을 돌려 클럽 위층 펜트하우스로 가려는 걸 보고 따라 간 라파엘이 슬쩍 매그너스의 안색을 살폈다. 단조로운 말투와 달리 얼굴은 밝다. 마치 재밌는 거리를 찾은 것 같은 표정에 라파엘은 그러면 그렇지 라고 생각했다. 늘어지게 쇼파에 앉은 매그너스가 라파엘을 보지도 않고 물었다.

 

"걔 이름이 뭐랬지?"

"알렉 라이트우드. FBI 블랙요원"

"흐응 그때 보여 준 사진 다시 줘봐"

 

갖고 다녔는지 정장 안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매그너스에게 내밀었다. 사진을 받아든 매그너스가 그만 나가라는 듯 손짓을 하고는 쇼파 앞 탁자 앞에 사진을 내려놓았다. 지난 번 블러드 메리를 빼올 때 찍힌 사진인지 그는 동료 요원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었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아무렇게나 걸친 듯한 자켓 아까 본 말끔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다르지 않은 건 낮게 가라앉은 눈매와 그 중심에 위치한 밝은 갈색의 눈동자였다.

 

사실 저를 잡으려는 FBI요원이 클럽에 매일같이 온다고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별 관심은 없었다. 종종 있던 일이었고 또 매니저인 라파엘이 잘 치워줬기에 매그너스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라파엘이 FBI요원이 잠복중이며 조만간 치우겠다는 보고를 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들춰봤던 파일이 이번 일의 원인이었다.

 

맨 앞에 있던 사진 속 알렉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올곧은 시선이 왠지 모를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 시선을 직접 마주하고 싶었다. 절대 악의 중심에 있는 자신의 세계에서는 마주 할 수 없는 그 눈을 매그너스는 보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알렉을 계속해서 클럽에 드나들도록 내버려 둔 것이었고

 

비록 오늘 본 그에게서 사진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오랜 시간 이런 일을 해왔던 매그너스는 당황한 그의 눈 뒤에서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정의를 보았다. 자신이 잡아야 할 용의자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반드시 잡아야한다는 그 사명감을 매그너스는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점점 더 재밌어 질 것 같은 느낌에 매그너스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

 

 

 

그로부터 일주일간 알렉은 판데모니엄에 가지 않았다. 매그너스가 블러디 메리를 가지고 있단 걸 알게 되었으니 그걸 되찾을 작전을 짜기 위해서였다. 루크를 닦달해 지원을 받아낸 알렉은 일주일동안 잠도 자지 않고 일에만 매달렸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작전이 철저해야했지만 사실, 약간의 틈이 있을 때마다 치고 올라오는 매그너스의 모습 때문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팀원들이 있을 위치를 확인하던 알렉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알렉의 동생이자 같은 팀원인 이지였다. 활발하던 평소와 달리 잔뜩 굳은 표정으로 들어오는 이지를 알렉이 걱정스럽게 보았다.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왜 그래."

"일은 내가 아니라 너한테 있겠지, 알렉.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일은 무슨, 별 일 없었어."

"웃기고 있네. 판데모니엄에 가지 않고부터는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있었잖아."

"진짜 아무 일 없었다니까. 그냥...요즘 좀 피곤해서 그래."

 

힘없이 말하는 알렉을 보던 이지가 가까이 다가와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알렉의 얼굴을 쓸어주었다.

 

"알렉, 어떤 상황이든 난 네 편이야."

"고마워, 이지."

"힘 좀 내고. 팀장이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장난스러운 말투로 꼬집어준 이지가 웃으며 문을 닫고 나갔다. 문이 닫히자 알렉은 몸을 의자에 기대 눕혔다. 정말이지 머릿속이 당장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매그너스..."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에 무거운 피로가 가득 붙어 있었다.

 

 

 

***

 

 

 

판데모니엄 입구 앞에 선 알렉이 한숨을 쉬었다. 오늘이 작전의 디데이였다. 이미 클럽 안에는 팀원들이 손님으로 위장하여 곳곳에 있고 알렉이 매그너스에게서 블러드 메리를 건네받으면 인이어로 신호를 보내기로 했다. 주먹 쥔 손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위장 작전은 여러 번 나갔지만 이렇게까지 긴장된 적은 처음이었다. 클럽 안에 들어가자 한 남자가 알렉에게 다가왔다. 매그너스를 조사하면서 본 적이 있는 남자였다. 그를 대신하여 클럽을 운영한다는 매니저. 그가 알렉을 데리고 저번에 보았던 룸으로 안내했다.

 

[알렉, 블러드 메리를 받으면 곧장 나와. 이지하고 제이스가 처리할거야.]

 

백업을 맡은 클레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알렉은 걸음을 옮겼다. 문이 열리고 들어가자 저번에는 온통 하얗던 곳이 오늘은 검은색 천지였다. 그리고 중간에 놓인 붉은 벨벳 쇼파에 매그너스가 앉아있었다.

 

"수고했어, 라파엘. 나가봐."

 

라파엘이 나가자 매그너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알렉을 돌아보았다. 머리가 아픈지 잔뜩 찌푸린 미간이 볼만했다. 걸음을 옮겨 테이블에 놓인 와인을 집어든 매그너스가 알렉을 보았다.

 

"한 잔 할래?"

"블러드 메리는 어디 있지?"

"아, 보자마자 일 얘기야?

"난 여기 거래를 하러 온 거야. 빨리 끝내지"

 

한손에 와인 잔을 든 매그너스가 알렉의 앞으로 걸어왔다. 매그너스는 걸어오며 알렉의 눈을 뚫어지게 보았다. 눈을 맞춰오는 매그너스의 행동에 알렉은 당황해하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의 눈 맞춤을 피한 쪽은 매그너스였다. 알렉을 지나쳐 입구 쪽 장식장에 잔을 내려놓고 서랍에서 상자를 꺼내들었다. 매그너스가 상자에서 꺼낸 것은 붉은 액체가 담긴 유리병이었다, 입구를 봉한 마개를 뽑자 달큰한 향이 맴돌았다.

 

"이게 뭔 거 같아?"

"블러드 메리... 액체가 아니었을 텐데."

"네가 본 건 가루였겠지. 그게 옮길 때 편하거든. 하지만 처음엔 액체였어."

"그게 어떻게 너한테 있는 거지?"

"내가 만들었으니까. 아, 그 멕시코 갱들이 안 알려줬나 봐?"

"네가 만들었다고? 어떻게……."

"글쎄…….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

 

테이블의 잔들 중에서 매그너스는 크리스탈 잔을 골라 쥐었다. 밝은 조명을 받은 크리스탈 잔이 반짝거리는 게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잔을 든 매그너스가 알렉이 보는 앞에서 블러드 메리를 잔에 따르자 달큰한 향이 퍼지기 시작했다. 마셔.

 

"뭐?"

"마셔봐. 나쁘지 않을걸."

"난 마약 같은 건 안 해."

"그렇지만 마약을 사러 왔잖아, 하지도 않는 마약을 사는 거야? 왜?"

"...알 거 없잖아."

"흐응, 그래, 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묻는 매그너스의 물음에 알렉은 어색하게 대답했다. 더 묻지 않는 매그너스의 모습에 안도감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모를 일이었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알렉의 손에 매그너스가 잔을 들려주었다.

 

"뭐야?"

"잠깐 들고 있어봐."

 

그렇게만 말하고 매그너스는 뒤로 돌아 와인 셀러로 다가갔다. 와인 셀러를 뒤적거리는 매그너스의 뒷모습을 보던 알렉은 제 손에 들린 잔을 내려다보았다. 블러드 메리가 가득 담긴 잔. 분명 손에서 내려놓는 게 맞는데 이상하게 잔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 달콤한 향이 마치 밧줄처럼 손을 칭칭 묶은 것 같았다. 도저히 잔을 쥔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얕게 나던 향이 지금은 진하게 흘러 나왔다. 블러드 메리를 가까이 할수록 심장박동이 빨라져왔다. 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다 컵 깨져."

 

매그너스의 목소리에 알렉이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레드 와인 한 병을 든 매그너스가 알렉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가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민망해진 알렉이 헛기침을 뱉었다. 별로 신경 쓰지 않는지 다가온 매그너스가 크리스탈 잔에 가져온 레드 와인을 따랐다.

 

"뭐하는 거야?"

"와인이랑 섞었어. 이젠 전혀 마약 같지 않잖아."

"그렇다고 마약이 아닌 건 아니지."

"왜 그렇게 생각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말 그대로야. 지금 여기 있는 건 전혀 마약 같지 않잖아?"

"와인으로 숨긴다고 숨겨질게 아니잖아. 와인이랑 전혀 다른 향이 난다고."

"바로 그거야."

 

매그너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알렉의 손에 들린 잔을 뺏어들어 한 쪽 벽에 던져버렸다. 파열음을 내며 깨진 유리 조각들이 블러드 메리에 붉게 젖어들었다. 갑작스러운 매그너스의 행동에 알렉이 그를 당황한 눈빛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는지 매그너스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한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지금 나랑 장난해?"

"블러드 메리의 가장 큰 특징은-"

"내 말 안들려?"

"-복용자에게만 그 향을 드러낸다는 거지."

 

매그너스의 말에 알렉이 입을 다물었다. 알렉은 한 대 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그런 알렉의 반응을 매그너스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블러드 메리는 피를 테마로 해서 만들어 졌어. 인간에게 피는 그저 불쾌하고 비릿한 냄새가 날 뿐이지만 뱀파이어에게는 세상 무엇보다도 달콤한 향을 흘리잖아."

"……."

"내가 보기엔 글쎄……. 알렉산더 넌 이미 뱀파이어가 된 것 같은데?"

 

알렉은 그 말을 듣고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심장 박동이 빨라져왔다. 주위의 모든 소리가 묵음으로 들리고 매그너스의 목소리만 들리는 듯했다. 알렉이 작게 뭐라 중얼 거렸다.

 

"...어떻게……. 어떻게 된 거야……."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은 조심해야해, 알렉. 여긴 판데모니움이야. 악마들이 사는 곳. 지옥의 음식을 함부로 먹으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걸 알잖아."

"...난 여기 와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 단지 처음에 왔을 때……."

 

말을 하던 알렉은 순간 그가 매그너스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던 일주일 동안 마신 술이 생각났다.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은 알렉을 보며 매그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거기에 블러드 메리를 섞어 놓았었어. 매그너스의 대답을 듣자 알렉은 점점 아려오는 통중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당장이라도 심장이 가슴을 찢고 튀어 나올 정도로 쿵쿵 거렸다. 숙인 허리를 펴지 않고 알렉은 매그너스에게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왜 나에게 이러는 거야...!!"

"왜 그러냐고? 흠…….내가 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게 뭔지 알아?"

"……."

"인간의 본성만큼 추악한 게 없다는 거야. 있는 사람일수록 그 내면은 끔찍한 혼돈이 가득하고 그들은 그걸 숨기려고 온갖 노력을 다해."

"……."

"그렇다고 그 인간들만 해당하는 건 아니지 누구든 숨기고 싶은 욕망이 하나쯤은 있는 법이니까 나는 그걸 드러내는걸 도와주는 거고.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네 욕망은 뭘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oh, come on. 이렇게 나올 거야?"

 

매그너스가 알렉의 뒤로 바짝 다가왔다. 그리고 그가 다가올수록 알렉은 점점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오고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을 들어 이마를 짚은 알렉이 손을 내리자 언제 왔는지 매그너스가 정면에 서있었다.

 

여유가 가득했던 눈이 지금은 잔뜩 가라앉은 체 알렉을 보고 있었다. 지난 번 과 달리 이번에 마주한 그의 눈은 훨씬 더 검었고 훨씬 깊어보였다.

 

바닥을 볼 수 없는 검은 호수 한 가운데를 옮겨놓은 것 같은 매그너스의 눈에 알렉은 온 신경을 뺏기고 있었다. 마치 모든 소리가 멈춘 것처럼 알렉의 귀에는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알렉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매그너스의 뺨에 가져다 대었다. 손에 감기는 촉감에 손가락 마디마디에 있는 신경들이 곤두세워지는 느낌이었다. 알렉은 점점 멍해지는 의식을 굳이 붙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공간을 떠도는 공기의 흐름조차 멈춰버린 것 같았다. 알렉의 손이 매그너스의 뒷목으로 옮겨갔다. 그때까지도 매그너스는 알렉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알렉의 시야가 점점 뿌옇게 변해갔다.

 

매그너스의 오른쪽 팔이 알렉의 뒷목에 감기고 알렉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살짝 풀린 동공에 뿌연 빛이 맴돌았다. 그걸 확인한 매그너스는 한 쪽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알렉의 귓가에 매그너스가 속삭였다.

 

"이게 너의 욕망인거야?"

"……."

"내 모습을 한 악마가 네 안을 휘젓고 다니는 거야?

"……."

"이제 그만 받아들여, 알렉산더"

 

목을 감싼 팔을 풀자 알렉은 일어설 수 없는지 그대로 무릎을 꿇고 주저 앉아버렸다. 매그너스도 따라 알렉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Agent Lightwood."

 

일어선 매그너스의 손에는 알렉의 귀에 숨겨져 있던 인이어가 들려 있었다. 계속해서 알렉을 찾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이어를 와인병 안에 넣고 알렉을 바라보았다. 잔뜩 붉어진 얼굴을 하고 밭은 숨을 내뱉는 그의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보기 좋았다.

 

"너를 처음 볼 때부터 궁금했었어. 네 그 눈이 욕망으로 얼룩진다면 어떻게 변할지. 그래서 일부러 너에게 다가갔었던 거고."

"……."

"지금 보니...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던 것 같네"

"……."

"그러니까, 알렉산더. 네 욕망을 드러내며 살아. 내 옆에서."

 

앞에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매그너스의 미소를 알렉은 홀린 듯이 쳐다보았다. 검은 호수 같던 그 눈이 자신을 끌어당겼다. 호수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듯 한 느낌이었다. 알렉은 점점 감기는 눈을 뜨려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정말 여기서 눈을 감으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고 귀에는 쿵쿵 울리는 맥박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틈새 사이로 꽂히는 매그너스의 목소리가 알렉의 힘을 빼게 만들었다,

 

"Good night, Alexander. and welcome."

 

당신이 깨어나는 그곳의 지옥을

Fin.

© 2018.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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