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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님

@youandrover

< 運命悲劇 >

*사망소재

 

 

 

 

 

 

 

 

남들과 다르다는 건 두려움을 낳는다.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까지 이유 없는 공포가 된다. 매그너스는 단 한 번도 이런 삶을 원한 적이 없었다. 비록 악마에게 받은 삶이라 할지라도 하루하루가 지옥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은 고통과 절망뿐이었다. 가장 큰 절망은 저를 저주하며 자신을 스스로 해친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며 마지막은 제 손에서 죽어가는 연인으로부터 끝나게 될 것이다.

 

덕분에 저를 두고 죽은 이들의 수를 세는 건 지친 일이 됐다. 차라리 아무도 제 마음에 들이지 않고 산다면 덜 상처받을 텐데 그러기엔 매그너스는 몹시 외로움을 탔다. 곁에 누군가 없으면 메말라 죽는 꽃과 같았다. 차라리 꽃은 시들어 죽기라도 했지만, 자신은 시들지도 죽지도 않았다.

 

“이상하네. 내 눈엔 당신이 아름다워.”

 

매그너스는 감았던 눈을 뜨고 앞을 봤다. 철창 너머로 웬 남자가 서 있었다. 터번을 둘러쓰고 있는 탓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큰 키의 다부진 몸매가 돋보이는 사내였다. 매그너스는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 시선의 끝엔 멀리 펼쳐진 사막이 있었다. 공기에 섞인 사막의 먼지가 입안을 텁텁하게 만든다. 에취, 매그너스의 재채기 소리에 남자가 소리 내 웃었다.

 

“듣기론 무서운 괴물이라 들었는데. 눈 때문에 그런 건가? 사람들 참 너무하네. 그치?”

 

종알종알 시끄럽기만 했다. 매그너스는 다시 지그시 눈을 감았다. 철컹대는 쇳소리가 들린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뜨고 앞을 보자 놀랍게도 문이 열려 있었다. 활짝 열린 문 너머엔 매그너스가 그토록 원하던 자유가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이리 호락호락하게 손에 쥘 자유였다면 애초에 뺏기지도 않았을 테다. 매그너스는 묶인 제 손과 문을 열어준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둘러쓴 터번 때문에 보이는 거라곤 그의 눈뿐이라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무슨 꿍꿍이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아 더 두려웠다.

 

“안 나올 거야?”

 

언젠가 한 번 문이 열렸던 적이 있었다. 그날 하루 내내 철창 사이로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들이 몰려와 돌을 던지고 소리를 질러댔었다. 매그너스는 아이들에게 즐거운 구경거리에 불과했고 덕분에 유난히 지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결국, 피곤함에 평소라면 놓지 않았을 긴장의 끈까지 놓고 세상모르게 자버렸다. 그러다 문득 고요함에 놀라 잠에서 깼다.

 

처음엔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아 헛것을 보고 있는 줄 알았다. 몇 번이고 두 눈을 깜빡이고 눈을 비벼도 열린 문은 그대로였다. 매그너스의 심장은 빠르게 쿵쿵 뛰기 시작했다.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앞섰다. 더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뛰쳐나갔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그리고 몇 발자국을 더 디뎠을까……. 화살이 날아와 종아리에 꽂혔다. 매그너스는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올가미가 목에 둘렸다. 그대로 질질 끌려가 다시 철창에 갇힌다. 그 뒤로 몇 번 더 이 짓을 반복했다. 희망과 절망을 반복해 오가자 애초에 도망칠 의지조차 꺾인다.

 

“나와도 돼. 괜찮아.”

 

매그너스는 다시 힘없이 눈을 감았다. 잠시 뒤 제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손목을 죄고 있던 사슬이 풀린다. 괴사가 될 정도로 꽉 죄어 있던 게 풀리자 한꺼번에 손끝까지 피가 통하며 손가락 마디마디가 다 저렸다. 그리고 몸이 허공에 붕 들린다. 그대로 남자에게 안겨진 꼴이었다.

 

매그너스는 이제 정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두려움에 온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침착해지려 해도 몸에 새겨진 고통이 선명히 떠올랐다. 남자는 매그너스를 품에 안고 철창을 빠져나왔다. 매그너스는 구명줄처럼 남자의 옷을 꽉 쥔 채 매달렸다. 한 발, 두 발, 언제 다시 목에 올가미가 쳐져 바닥을 기게 될지 몰라 겁이 났다. 한참이 지나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매그너스의 눈에 보이는 건 푸르게 펼쳐진 바다였다.

 

“나 왔어, 매그너스! 매그너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얼마 뒤, 문이 열리고 남자가 들어왔다. 웃으며 다가온 남자가 매그너스의 이마에 쪽 입을 맞췄다. 매그너스는 남자의 입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벅벅 이마를 닦아내도 남자는 기분 좋게 웃을 뿐 조금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난 어린애 아니라고, 알렉산더.”

“알렉이라고 부르라니까.”

 

매그너스가 뿌루퉁하니 입을 내밀며 불만을 표시했지만, 알렉산더는 딴청을 피우며 화제를 전환했다.

 

“오늘은 뭐 하고 있었어?”

“책을 읽고 있었어.”

“꽤 어려운 책인데, 똑똑하네.”

 

알렉산더가 한껏 기특하단 표정을 지으며 매그너스의 머리를 헝클였다. 매그너스는 포기하고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저녁엔 뭐 할 거야? 계획 없으면 함께 저녁 먹고 밤 산책할까?”

“그러든지.”

“좋았어.”

 

새침한 매그너스의 대답을 들은 알렉산더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알렉산더는 다시 매그너스의 이마에 꾹 입을 맞추고는 밤에 보잔 인사와 함께 방을 나섰다. 매그너스는 문이 닫히는 걸 끝까지 보고 나서야 다시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괜히 쓱쓱 이마를 문지르며 팔랑 책장을 넘긴다.

 

알렉산더에게 붙잡힌 손을 꼼지락대자 오히려 더 꽉 쥐어 온다. 매그너스는 고개를 들어 알렉산더를 올려다봤다. 알렉산더는 마주 시선을 내려 눈을 마주쳐 싱긋 웃었다.

 

“왜 웃어?”

“네가 좋아서.”

 

귀 끝이 뜨거워 매그너스는 남은 손으로 귓불을 만지며 시선을 피했다. 부끄러워하는 매그너스의 반응에 알렉산더는 참지 못하고 조금 소리 내 웃었다.

 

“매그너스, 네 눈은 정말 예뻐.”

“덕분에 어둠을 틈타 숨어다녀야만 하는데.”

“그래도 예쁜 건 예쁜 거지. 분명 널 이해해줄 사람이 더 있을 거야.”

“그럴까?”

“그럼. 걱정하지 마. 날 믿어.”

 

작은 속삭임이었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서로의 시선이 어지러이 얽힌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살며시 숙이는 고개에 매그너스는 두 눈을 감았다. 입술이 닿았고 첫 키스는 달콤했다. 허나 첫사랑은 쓰디쓴 독배를 마시는 것으로 운명을 다할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이 서로에게만 열중해있는 대신 조금 더 신중했더라면 그래서 밤 산책을 누군가에게 들키지만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더러운 이교도를 처단하라는 성난 고함들이 뒤를 쫓았다. 매그너스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알렉산더의 손을 놓쳤다. 알렉산더가 얼른 다가와 자신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날 두고 가. 저들이 원하는 건 나야. 당신 혼자라면 도망칠 수 있잖아.”

“그런 말 마. 그렇게 하려 했다면 벌써 그랬을 거야.”

 

알렉산더는 억지로 매그너스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더디게 앞으로 도망칠수록 뒤쫓는 이들의 소란스러움은 가까워져 갔다. 붙잡히는 건 순식간일 테다.

 

허공을 가르는 바람 소리와 함께 화살이 날아와 등 뒤에 꽂혔다. 매그너스는 멍하니 꽂힌 화살을 중심으로 퍼지는 핏자국을 바라봤다. 모든 게 느리게 흘러갔다. 천천히 알렉산더가 쓰러지고 매그너스는 그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함께 비탈을 굴렀다. 얼마 가지 못해 사람들의 발소리가 비탈길 위에서 들려왔다.

 

“한 놈을 맞혔어!”

“어디야? 어디로 간 거지?”

“멀리 못 갔을 거야. 근처를 찾아봐.”

 

다행히 수풀 속으로 떨어진 탓에 위에선 아래의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매그너스는 수풀 너머 빛나는 횃불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곧 사람들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불빛도 사라진다. 어둠에 휩싸여 매그너스는 알렉산더를 바라봤다. 알렉산더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너무 어둡고 추웠다. 그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제가 끌어들인 것이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다시 들려오고 있었다. 매그너스는 살며시 알렉산더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렉산더, 정신 차려 봐.”

 

울음을 머금은 목소리에 알렉산더는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뚝뚝 눈물이 제 얼굴 위로 떨어진다. 어쩐지 눈앞이 침침했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붉게 젖은 매그너스의 얼굴이 보였다.

 

“피가 나, 매그너스. 다쳤어?”

“이건, 이건 내 피가 아니야.”

“네 피가 아니라니?”

“알렉산더…. 제발.”

“왜 울어? 울지 마. 난 네가 우는 게 싫어.”

 

힘겹게 들어 올린 손으로 알렉산더가 매그너스의 젖은 볼을 닦아 주었다. 손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얼마 남지 않은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미리 알 수 있었다. 매그너스는 그의 손에 제 볼을 비비며 온기를 나눠주기 위해 노력했다.

 

“매그너스, 걱정하지 마. 다 괜찮아질 거야.”

“안 돼. 내겐 당신이 필요해. 제발 날 혼자 두지 마.”

“…사랑해.”

 

잔뜩 갈라지고 떨리는 목소리로 알렉산더는 마지막 고백을 전했다. 하얀 입김이 허공에 흩어지더니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매그너스가 아무리 알렉산더의 이름을 불러도 그는 이제 대답하지 못한다. 매그너스는 여전히 알렉산더의 손을 힘주어 잡은 채 그의 가슴에 엎드려 속삭였다.

 

“미안해.”

 

클럽의 쿵쿵거리는 비트를 뚫고 날아오는 화살 소리에 매그너스는 황급히 몸을 틀었다. 붉은 깃이 날아가 적을 꿰뚫는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틀자 한 사내가 보였다. 성큼성큼 다가와 자신의 앞을 지나치는 이를 따라 끝까지 시선을 쫓았다. 이상하게 낯설지 않은 그리운 느낌에 묘한 기분이 든다.

 

 

‘Who are you?’

Fin.

© 2018.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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