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울님
@dlddnfdkdlel
< 감기 >
언제나 화려한 모습의 매그너스는 가벼운 우울감을 겪고 있었다. 긴 생을 살다보니 고질병처럼 따라다니는 우울증은 감기처럼 주기적으로 증세를 보이곤 했다. 그래선지 매그너스는 간혹 알렉의 눈을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다.
알렉의 보석 같은 두 눈동자는 매그너스가 가장 사랑하는 것 중에 하나였다. 그 눈동자는 보석같이 아름다우면서 또렷한 생기를 가지고 있었다. 매그너스는 가끔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제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는 어둠을 발견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리고 감기 같은 우울감이 오면 그 생각은 심해졌다.
“지금은 집중하는 일이 있어서, 만나긴 힘들 것 같아.”
-알겠어요, 무리하진 말아요.
알렉을 피하기 위한 변명 같은 거짓말에 전화 너머의 아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도 그럴 만하게 매그너스와 알렉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못 한지 한 달을 채워가고 있었다. 아쉬워하는 알렉의 목소리에 마음이 조금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방치한 감기가 심해지듯 우울감은 점점 심해지면서 그와 마주하는 일이 두려워졌기 때문이었다. 전화가 끊기고, 매그너스는 아무생각 없이 잘 수 있게 수면제와 물을 마시고 폭신한 침대에 몸을 뉘었다. 내일은 기분이 나아지길 바라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향초와 가장 포근한 이불에 둘러싸여 잠들었다.
다음날 새벽, 수면제 효과가 떨어지는 때에 눈이 떠진 매그너스는 자신의 계획이 잘 되지 않았음을 느끼며 짜증이 밀려왔다. 어제보다 기분이 더 나빴다. 게다가 이렇게 나쁜 적은 근 100년만 인 듯 했다. 우울함이 극에 치달았다. 몸을 감싸오는 포근함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평소 좋아하던 초의 향조차 거북했다. 결국 매그너스는 수면제는 한 알만 복용하라던 카타리나의 말을 무시하곤, 두 세알을 다시 입에 털어 넣었다. 이번엔 깨지 않고 쭉 잠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애써 눈을 감았다.
*
알렉은 며칠 전부터 자신과 마주치지 않는 연인의 두 눈동자가 그리웠다. 최근 이상할 정도로 만큼 쏟아져 나오는 데몬들 때문에 수장인 알렉의 일거리는 산처럼 늘어났고, 연인과의 끊긴 만남은 한 달을 채웠다. 물론 만나지 못 한 게 인스티튜의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최근 매그너스는 자신을 피하고 있었다. 다정함이 가득 담긴 눈동자로 –마이 엔젤을 불러주는 것이 그에게 몇 개 없는 가진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다. 지금에 알렉에겐 그게 간절히 필요했다. 지치고, 힘들고, 키스하고 싶었다.
-지금은 집중하는 일이 있어서, 만나기 힘들 것 같아.
“알겠어요, 무리하진 말아요,”
오랜만에 생긴 여가시간에 데이트 약속을 위해 건 전화 너머에는 조금은 딱딱하게 내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꼭 만나고 싶었던 마음에 아쉬운 목소리가 절로 나왔다. 한 달 전, 자신과 매그너스가 얼굴을 마주했던 마지막 그 날, 그는 어딘가 불편하고, 힘들어 보였었다. 눈을 묘하게 자꾸만 피하고, 작은 스킨십에도 쉽게 몸을 뺐었다. 그 당시는 그냥 넘어갔었지만, 지금은 그 때 그가 아팠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다. 결국 알렉은 매그너스의 얼굴만 보고 올 심상으로 겉옷을 챙겨 급하게 밤거리로 나왔다.
*
노크를 해도 문 너머에서 응답이 없었다. 항상 먼저 문을 열어줬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매그너스에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매그너스?”
알렉은 결국 문고리를 돌려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항상 단정히 정리 되어있던 모습과는 다르게 조금씩 어질러진 집안풍경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누군가 침입한 거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만 침입의 흔적은 없었다. 항상 그가 일하는 방도 잔뜩 어질러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매그너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매그너스.”
결국 알렉은 마지막 남은 가장 익숙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어두운 방 한가운데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매그너스의 모습이 보이자 알렉은 작게 안도했다. 그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다가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본 매그너스의 얼굴은 어둠속에서도 매우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늘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매그너스라서 알렉은 그가 진짜 아픈 걸까 걱정이 되었다. 간신히 잠이 들었는지 고르지 못한 숨소리와 찌푸려진 미간이 안쓰러워 알렉은 다다가 이마에 살짝 키스했다. 그러자 옅은 잠에서 깨버린 매그너스가 피곤하고 무거운 눈꺼풀을 깜박이며 알렉을 올려다봤다. 불을 켜지 않은 탓에 어두운 시야에도 그의 노란 두 눈동자는 빛이 났다.
“알렉산더?”
“저 왔어요.”
이마에 다시 키스하며 알렉은 매그너스를 품에 안고 누웠다. 그가 이런 상태인지 알았다면 아무리 바쁜 상태였어도 달려왔을 텐데, 알렉은 인스티튜의 일거리들 때문에 오기를 지체한 자신이 조금 원망스러워졌다.
“어서와.”
알렉에 품에서 뭉개진 발음으로 환영하는 매그너스의 목소리는 아직도 졸음이 묻어있었다. 다시 잠들 수 있게 등을 토닥여주는 알렉에 손길이 좋은지 눈이 감겨 수마에 빠지면서도 매그너스는 그간 우울했던 기분이 사라지는 거 같았다. 거북하게 느껴졌던 향초에 향이 새벽바람 내음이 나는 알렉의 옷가지에 지워지고, 부담스럽던 푹신한 침구 보다 따뜻하고 잘 다져진 알렉의 몸이 기분이 좋았다. 졸음에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함에도 그가 너무 좋았다.
*
“좋은 아침.”
오랜만에 기분 좋게 잠에서 깬 매그너스는 눈을 뜨자마자 놀란 토끼눈을 됐다. 알렉이 왜 여기 있는 거냐고 묻는 듯한 눈동자에 알렉은 귀여워 웃음이 났다. 알렉은 아침이라 화장기 없는 매그너스의 이마에 입술을 대며 자신이 언제 왔는지 설명 해주고, 매그너스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아무래도 수면제에 부작용으로 짧게 필름이 나간 모양이었다.
“제 말 듣고 있어요?”
이야기 내내 시선을 피한 체 생각에 빠진 모습에 알렉은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그러자 많이 놀란 건지, 몸을 뒤로 빼면서 숨을 삼키는 매그너스의 행동에 알렉이 더 당황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미안해요. 이렇게 놀랄 줄 몰랐어요.”
“아니야, 괜찮아.”
강아지처럼 올려다보는 알렉의 시선에 매그너스는 눈이 마주쳤다. 우울할 때면 두렵던 그 눈동자가 오늘은 두렵지 않았다. 마법으로 상처를 치료하듯 순식간에 끝난 우울감에 오히려 당황감이 들 정도였다.
“미안해요.”
아직도 딱딱하게 굳어있는 표정에 알렉은 다시 사과했다. 아무래도 자신 때문에 많이 놀란 것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매그너스는 그런 그의 모습에 미소로 표정이 풀어졌다. 이제 우울감은 중요하지 않았다. 눈앞에 사랑스런 애인에게 집중 할 차례였다. 시무룩해하는 연인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매그너스는 깊게 키스했다. 근 한 달 만에 키스였다.
“오늘은 인스티튜로 급하게 갈 일 있어?”
“없어요.”
오랜만에 보는 알렉의 환한 미소에 매그너스는 자신이 지금까지 우울했다는 사실을 잊었다. 자신을 눕히고 덮쳐오는 그의 행동에 몸을 맡기며, 행복하게 웃었다. 감기는 지나갔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