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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님

@August0818
< 동화 속 이야기처럼 >

*매그너스가 알렉을 평생의 반려로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생각해 봤습니다. 말렉은 언엔딩 해피니스 하니까요!

*소설 원작에서 나온 내용을 살짝 임의로 바꾼 게 있습니다.

 

 

‘마치 동화 속 같다’, 아마 먼데인이라면 이 말이 낭만적으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도우월드를 살아가는 존재들에게는 사실을 명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섀도우 월드에서는 ‘동화(fairy tale)’ 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섀도우 헌터들이 매 순간 다짐하는 것과 같이 동화에 나오는 모든 마법들과 신화들은 현실에서도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먼데인 세계처럼 잠들기 전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읽어주는 베드타임스토리 같은 건 그들에게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런 섀도우 월드에서 알렉은 어렸을 때부터, 심지어는 제이스와 파라바타이를 맺기도 훨씬 전부터 네피림들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모든 종족들의 특성과 역사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졌다. 당연히 다른 네피림들은 자신들이 가진 천사 혈통의 우월성에 심취해 악마 사냥이라는 숙명 이외의 호기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 차이점은 자연스레 알렉을 혼자서 알리칸테 도서관의 수많은 책들을 탐구하게 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많은 신비로운 설화들이 실제 세계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받아들였지만, 아직 어린아이였던 알렉의 마음 속은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쉽사리 믿기 힘든 뜬구름 같을 뿐이었다. 그래도 자연과 연결되어 있어 모든 생물들과 무생물들을 감지할 수 있다는 요정이라든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마법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해결해 버리는 마법사라든가 하는 동화 속 등장인물들은 알렉의 호기심을 충족해 주기에 충분했다.

알렉은 그러면서도 마음 속 한편으로는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부모님 때문에 언제 이 비밀스러운 탐구가 그만둬질지 걱정했지만, 알렉의 걱정이 무색하게 부모님은 각자의 문제에 열중해 있었기 때문에 알렉이 혼자서 뭘 하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도서관의 책을 한 권도 남김없이 다 읽어버릴 때까지 이 혼자만의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과거의 별난 취미 같은 걸로만 남을 줄 알았는데, 그 어린 시절의 호기심이 미래 자신의 운명에 큰 도움이 될 줄은 알렉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여느 날처럼 알렉이 뉴욕 인스티튜트의 수장으로서 바쁜 일과를 마치고 브룩클린에 위치한 매그너스의 아파트에 왔을 때였다. 알렉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자 매그너스의 아파트 내부가 잠시 휴식을 취하며 연인과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에 딱 좋은 구조로 바뀌어 있었다. 알렉은 매그너스의 이런 배려를 바로 알아챘다.

“매그너스, 언제나 신경써줘서 고마워요.”

매그너스는 알렉과 사귀고 나서 고맙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지난 400년 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라 그런지 들을 때 마다 심장 근처가 간지러웠다. 하지만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곧 매그너스는 애써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아니, 이정도로 뭘. 오늘 일은 어땠어? ”
“늘 그랬듯이 똑같았죠, 뭐. 악마 출몰 신고 몇 건이랑 아다만트 시타델로 보낼 무기 제조 신청 몇 건… 아, 지금까진 별일 없었지만 혹시라도 다운월드에 무슨 일이 있다면 꼭 알려줄게요.”
“그래. 인스티튜트 수장이 애인이라 정말 안심이 되는 걸, 알렉산더.”
“매그너스는요? 매그너스는 오늘 어떻게 지냈어요?”
“나는 포션을 만드는데 쓸 웨어울프의 털이 다 떨어져서 오랜만에 제이드 울프에 방문했지.”


소소하게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면서 혹시나 기분 나쁜 일이 있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모습은 그들이 서로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알렉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이 매그너스의 책상 앞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사트리나? 매그너스, 이거 릴리스의 다른 이름 아니에요?”
“맞아. 그런데 알렉산더, 그건 어떻게 알았니?”
“그건, ......말하기 좀 부끄럽지만 사실 어렸을 때 동화를 많이 봤거든요. 공부하려고 라기보단 재미있어서 본거였지만, 그래도 그 취미 덕분에 다운월드에 대한 걸 이론적으로나마 많이 알게 됐어요.”

그러다가 알렉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순식간에 귀 끝이 붉게 달아오른 상태로 황급히 덧붙였다.


“아, 그렇다고 일부러 매그너스 때문에 찾아본 건 아니에요. 사실 사귀기로 한 이후에 매그너스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알리칸테에 있는 월록 관련 책을 몇 권 다시 보긴 했지만, (그 순간 매그너스는 매우 작은 소리였지만 알렉이 ‘젠장 알렉, 닥쳐. 닥치라고’ 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어쨌든 어렸을 때 일은 진짜에요.”

알렉이 우왕좌왕하며 변명하는 모습을 귀엽다는 듯이 보면서도, 매그너스는 마음 한편으로는 이 어린 네피림이 자신에게 주어진 고귀한 빛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며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신에게 원망 대신 감사를 표했다.

 

매그너스가 400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 가면서 습득한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렇게 많은 심리적 동요를 수반하지 않았다. 그는 쌓여가는 경험들을 토대로 육체적 소통만 가지고도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알렉을 만나고 나서야 매그너스는 지금까지 느꼈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경험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판단이 명확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전에 겪었던 나쁜 경우 때문에 같은 잘못을 반복할 수도 있었다. 매그너스의 사랑이 그리는 그래프는 그런 잘못된 사랑의 경험들로만 채워진, 한 쪽으로만 치우쳐져 있는 그래프였다.


매그너스가 석회화를 겪었던 원인은 더 이상 진실된 사랑을 시도하려는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올림해서 17000명 가량의 애인들을 사귀었던 과거는 매그너스가 석회화에 대해서 순응하려는 것과는 정반대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석회화가 진행되는 이유는 그때문이 아니었기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악마의 서에서 근세시대에 악마 종이 더 추가되었다고 나와있었는데 정말인가요?”

“물론이지, 알렉산더. 내가 그 시대에 있었는데 말이야, 그 때에는 내가 판데모니움 클럽이 아니라 작은 악기점을 운영했지.”

“글쎄요 매그너스, 래그노어 펠이 집필했던 <근세시대를 추억하며> 에서는 화려한 취향을 가진 오랜 월록 친구의 악기 연주를 한번 더 들을 바에는 차라리 자기 귀를 잘라버릴 거라고 하던데요.”

“오, 그 친구가 하는 말은 믿지 말렴. 래그노어는 예전에도 말이야, ......”


매그너스는 그 때서야 자신의 몸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퍼져 나가던,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시도들 뒤에도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되기만 하던 석회화가 비로소 풀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석회화를 막는 진정한 해결책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다 보여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을 만나 마음을 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날은 바로 매그너스가 알렉이라면 평생 자신의 모든 사랑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문득 떠올린 날이었다.

‘내 천사, 넌 언제나 나를 구원해주는구나.’


매그너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늘 그랬던 것처럼 알렉의 무릎에 기대어 편안하게 풀어졌다. 곧바로 알렉은 아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같이 살까?”


오늘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물어보는 것처럼, 그만큼 대수롭지 않은 것을 물어보듯이 여상한 말투로 매그너스는 말했다.
 

 


동화 속에서처럼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Fin.

© 2018.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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